간밤에 한국 트위터리안들은 기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출판사 옆 대나무숲이란 이름의 계정에서 시작된 뒷담 릴레이가 타임라인을 점령한 것이다. (출판사 옆 대나무숲 이전에는 출판사X란 이름의 전신이 있었나본데, 안타깝게도 발본색원 당해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했다고 한다.) 이 계정들은 한 명 관리자도 없고 프로필에 비밀번호를 공유하며 누구든 와서 한 마디 얹을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중간중간 트윗들이 지워지기도 하고 때로는 계정이 폭파되기도 한다. 촬영장 옆 대나무숲이 유독 그랬다. ('출판사 옆 대나무숲은 한 번 당해서 그런지 세컨, 서드 계정까지 준비해둔 상태였다.'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라 정정합니다. 리밋 때문이라고 해요.)

 

대나무숲들을 쭉 읊어보면, 출판사, 신문사, 촬영장, (연극)공연장, 디자인회사, IT회사, 게임회사, 우골탑, 인턴, 시댁, 백수, 방송사, 연구실 정도로 추릴 수 있다. 특정 업계 대나무숲들은 한결같이 업무에 대한 애정을 필요로 하는 업종이고 문제도 비슷하다. 과도한 노동은 기본이고 임금 체불에 희롱이나 언어폭력 같은 모욕적 행태와 어떤 경우엔 신체적 폭력도 가해진다. 신기한 것은 사장이란 사람들이나 쨌든 일종의 갑 스피릿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나 정서 같은 것이 상당히 유사해서 꼭 하나의 거대한 욕정멍청이가 존재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우리 회사에도 두 명의 도드라지는 욕멍이들이 사는데, 업무 특성상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을 것 같아 대나무숲은 못 만든다. 상사 옆 대나무숲 같은 거 있으면 제보할 생각은 있다.) 젋고 나이브함은 회사가 먹는 사골국이고,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사골국 냄비에서 고아질 걸 알면서도 배울게 있을 거라 생각하며 기꺼이 몸을 던진다. 하지만 회사는 사골국 먹고 식탁에 남긴 기름자국이 왜 잘 안닦이냐며 이렇게 박박 닦으라며, 넌 아직 멀었다고 윽박지른다. 아직 냄비 앞에 줄 선 사람이 많다 이거다. 심지어 줄 선 사람이 없는(어떤 시어머니들은 줄 선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가족 사이도 사람 대 사람의 관계 역학 그 이상의 방어적이고, 종종 변태적으로 표현되는 권력구도를 닮아있다.

 

정말로 짜증나는 것은, 이 트윗들을 보며 아오 귀여운 것들 난 너무 때탔나봐 하며 꼰대근성을 유감없이 선보이는 대선배들이다. 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싶어서 굳이 기어들어가 트윗들을 살펴보면 미국에서 육아에 전념하며 살고 있어요 후훗^^ 이런 식이다. 더 나쁜 상황들, 그러니까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을 보며 사는(당사자도 아니다.) 사람도 있다. 대체 이런 사람들의 정체를 알 수가 없는게, 그나마 이렇게 트위터로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정도라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보거나 혹은 그 사람들이 왜 얘기를 꺼낼 수 없는지, 상황을 적극적으로 타개해나갈 수 없는지 생각해볼 정도의 깜냥도 안 되냐는 거다. 뭣보다도 정말 자신들이 그렇게 피로한 삶을 살아왔다면 혹은 살고 있다면 쉽게 그런 트윗을 할 수는 없을 게다. (귀여움을 가장한 연대감 같은 것이 먼저 느껴졌을 거라 생각한다.) 이 대나무숲들이 만들어진 이유에는 관심도 없이 허세나 떨고 싶어서인지 뭔지 한 마디씩 얹는 꼴들을 보니, 이 가느다란 나무들은 그냥 말라 죽겠구나 싶었다. 방어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자기 하나 지키기도 힘든 나라와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다각적으로 생각할 여유까지 없어지는 걸까. 시댁 대나무숲에 부정적인 기운이 너무 많아 싫다며 언팔하겠다고 굳이 결심의 트윗을 한 그 분들은 양반이다. (트위터는 보호설정 해놓지 않는 한 공개이고 발행이다. 일정 키워드로 검색하면 관련 트윗이 다 뜬다. 내가 그런 트윗들까지 피할 방도가 없다.)

 

또 다른 상황은 엄청난 긍정파워를 내뿜는 사람들인데, 뭐 천성이 그러하니 어쩌겠나 싶다가도 그 사람들의 무한 긍정 파워가 가진 장점이자 단점인 완충능력이 그들 스스로에게만이 아니라 주위에 끼치는 영향을 보면 은근 난감하다. 물론 부정적인 상황들에 둘러싸여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사람이 건강한 건 아니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천성이 긍정적인 사람들과 비교당하며 참아야하는 상황에 이르거나,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되는 상황에는 그야말로 여이설화의 복두장이가 되어 시름시름 앓고 마는 것이다. 뭐 어떤 사람은 왜 떠나지 않고 그 고생을 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느냐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도 있단 사실을 잊지 말자. 모두가 돈만 보고 사는 건 아니다. 배부른 소리가 아니라 긍정파워를 가진 사람들이 있고 부정파워를 가진 사람이 있는 것처럼 천성이다. 그만두라고 쉽게 말하는 거나 좋으면 참고 살아야지라고 말하는 것 둘 다 우스운 일이다.

 

대나무숲은 임금님 귀가 희한하게 생겼음을 이야기하지 못해 병이 난 사람이 치유받는 장소이다. 사람에게는 얘기하고자 하는, 자신을 드러내고 생각한 바를 꺼내고 싶어하는 성격이 있다. 목이 댕강 날아갈까 임금앞에서 웃을 수도 없고 부인에게 얘기하지도 못해 끙끙 앓다 죽게 생긴 남자는 대나무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고 소리치고는 병이 낫는다. 대나무들은 그의 이야기를 메아리처럼 반복하며 옮겼다. 메아리들은 각각 다른 방향에서 다른 시간에 들려와도 모두 하나의 이야기이다. 임금님은 대나무를 모두 베어 버리고 다른 나무를 심었지만 바람이 불면 또 같은 소리가 들려서 결국 당나귀 귀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다행히도 이 동화의 임금님은 꽤 지르는 성격이셨는지, 눌러 쓴 관을 벗어던지고 너네 이야기 더 잘 들으려고 그런건지 귀가 막 자라더라고^^ 하시며 칭송받는 엔딩을 보셨다.

 

사람들이 출퇴근길에 좋은 생각 따위를 모으던 때는 오래전에 지났지만, 더 나쁘게도 이건 참고 견뎌야하는 당연한 일상이라고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도로와 선로를 따라 오가며 하루를 보낸다. 나는 오늘도 그 많다는 돈이 어디서 굴러다니고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덧 1. 쓰면서 중간중간 과격한 표현들을 수정했다. 여기는 대나무숲이 아니니까. 때는 이미 완연한 자기검열의 시대다.

덧 2. 뭐하는 계정인지 대충 설명해주고 이름을 말해줘도, 대나무숲이 왜 대나무숲인지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신기하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어릴 때 다들 한 번씩 읽었던 동화 아닌가? 대나무숲이 아니라 다른 버전이 있나?

덧 3. 갑의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자기 이름 걸고 하는 계정으로 업계 대나무숲을 팔로잉하면 그곳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리스트 추가도 있고 즐겨찾기라는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도 계속해서 트윗들을 확인할 수 있다. 아, 눈치가 있으면 갑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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